염증성 장질환(IBD)이 아시아 전역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신규 환자 증가에 이어 기존 환자까지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젊은 환자 중심으로 인식돼 온 염증성 장질환이 장기 생존 환자 증가와 함께 고령층까지 확대되면서, 조기진단과 다학제 진료는 물론 소아·청소년부터 성인, 고령층까지 생애주기를 고려한 장기 관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앙대학교병원(병원장 이재성) 소화기내과 서정국 교수 연구팀은 일본을 비롯해 한국·중국·홍콩·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5개 지역의 지난 100년간 염증성 장질환 역학 변화를 분석하고 향후 의료·정책적 대응 방향을 제시한 연구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이번 연구 논문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염증성 장질환의 역학적 궤적: 발생률 증가에서 유병률 누적으로의 전환(The trajectory of inflammatory bowel disease in east and southeast Asia: transitioning from acceleration in incidence to compounding prevalence)’은 소화기학 분야 국제학술지 ‘The Lancet Gastroenterology & Hepatology’ 최신호에 게재됐다.
연구에는 역학 분야 석학인 캐나다 캘거리대학교 길라드 카플란(Gilaad G. Kaplan) 교수를 비롯해 신지 오카바야시(Shinji Okabayashi) 박사 등 아시아 주요국 염증성 장질환 연구진이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서정국 교수와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박상형 교수, 대항병원 양석균 원장이 공동 연구진으로 참여했다.
아시아 IBD 100년…‘발생률 급증→유병률 누적’ 전환
연구팀은 1920년대 일본에서 염증성 장질환 첫 증례가 보고된 이후 약 100년간 축적된 역학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과 도시화에 따른 염증성 장질환 확산 과정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염증성 장질환의 역학적 변화 과정을 ▲발생기 ▲발생률 급증기 ▲유병률 누적기 ▲평형기 등 4단계로 구분하는 역학적 진화 모델을 제시했다.
아시아 지역은 식습관의 서구화와 도시화, 생활환경 및 위생환경 개선, 영유아기 항생제 사용 등 다양한 환경 변화와 함께 염증성 장질환 발생률이 빠르게 증가하는 ‘2단계 발생률 급증기’를 거쳐온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염증성 장질환 발생률이 가파르게 증가한 데 이어 현재는 신규 환자 발생과 기존 환자의 생존이 동시에 이어지면서 환자가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2단계 후반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단순히 신규 환자가 증가하는 문제를 넘어 이미 진단받은 환자들이 장기간 생존하면서 전체 환자 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지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다.
젊은층 질환서 전 연령대 만성질환으로
염증성 장질환은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으로 대표되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다.
주로 젊은 연령층에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치료기술 발전과 장기 생존 환자 증가에 따라 고령 환자 역시 증가하면서 질환 관리의 복잡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단순히 신규 환자를 조기에 진단하는 것을 넘어 장기간 질환을 관리할 수 있는 의료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특히 소아·청소년 환자의 경우 성인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치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소아-성인 이행기 케어를 구축하고, 고령 환자에게는 연령과 동반질환 등을 고려한 맞춤형 치료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기진단·다학제 진료·급여정책 마련 필요
연구팀은 급증하고 누적되는 염증성 장질환 환자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주요 과제로 조기진단 인프라 확충과 다학제 진료모델 구축을 제시했다.
또한 ▲소아·청소년부터 성인 및 고령층까지 생애주기별 맞춤형 치료체계 마련 ▲소아-성인 이행기 진료 강화 ▲생물학적 제제 등 고가 치료제에 대한 합리적인 약가·급여정책 마련 등을 주요 과제로 제안했다.
특히 환자 수 증가와 장기 치료가 필요한 염증성 장질환의 특성을 고려할 때 지속 가능한 진료체계와 건강보험 보장성 정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정국 교수는 “염증성 장질환은 과거에는 주로 서구에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이번 글로벌 공동연구는 아시아에서 염증성 장질환이 지난 100년 동안 어떤 경로로 증가해 왔는지를 통합적으로 정리하고 앞으로 누적될 의료 부담에 대비하기 위한 임상적·정책적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 교수는 “실제 임상 현장에서도 젊은 환자뿐 아니라 고령층에서 새롭게 진단되는 환자가 늘어나는 등 환자군이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다”며 “환자의 연령과 질환 특성에 맞는 표준화된 진료 프로토콜과 다학제 진료체계를 바탕으로 환자 맞춤형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연구와 진료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한편 서정국 교수는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에서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을 비롯해 대장용종 및 대장암의 진단·치료 내시경을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으며, 빅데이터를 활용한 염증성 장질환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